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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세계 여행: 인간이 만든 어둠 속의 또 다른 도시들

by 마루누나쓰 2025. 5. 2.

    [ 목차 ]

“태양빛이 닿지 않는 곳에 펼쳐진 또 하나의 문명”
우리는 여행하면 대개 푸른 하늘과 탁 트인 자연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지구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지하 공간에도 사람들의 삶과 문화, 그리고 시간이 고스란히 흐르고 있습니다. 이곳은 단지 땅 아래에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생존과 신앙, 권력과 예술이 깃든 인간의 또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죠.

이번 글에서는 전 세계의 숨겨진 지하 여행지 3곳을 소개합니다. 각각 폐광, 지하도시, 지하묘지라는 다른 형태를 띠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지하에서 펼쳐진 인간의 독창성과 적응력을 보여줍니다. 낮이 아닌 ‘어둠’을 여행하는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면, 이 지하 세계들은 분명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것입니다.

지하 세계 여행: 인간이 만든 어둠 속의 또 다른 도시들
지하 세계 여행: 인간이 만든 어둠 속의 또 다른 도시들

1. 슬탄굴카 – 폴란드의 소금광산이 만든 지하 성당

폴란드 크라쿠프 근처에 위치한 비엘리치카 소금광산(Wieliczka Salt Mine)은 13세기에 개장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소금 광산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한 산업 유산을 넘어 지하 300m 아래에 건설된 거대한 성당과 미술관, 호수, 복도로 이루어진 지하 도시 그 자체입니다.

광부들은 수세기에 걸쳐 소금을 채굴하며, 동시에 자신들의 신앙심을 표현하기 위해 소금 바위를 직접 조각해 기둥, 조각상, 샹들리에, 제단까지 만들었습니다. 특히 가장 유명한 공간인 '세인트 킹가 성당(Saint Kinga’s Chapel)'은 천장이 높고, 정교한 부조와 조명이 있어 진짜 성당 못지않은 위엄과 신비로움을 자아냅니다.

 

여행 포인트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방문객들은 약 3km 구간의 지하 탐험을 할 수 있습니다. 입장 시 가이드와 함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며, 약 800개의 계단을 통과해야 본격적인 지하 여행이 시작됩니다. 내부 온도는 연중 일정한 약 14도로 유지되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쾌적한 환경입니다.

광산 내에는 작은 호수가 있고, 역사 박물관과 예술 전시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단순한 '관람'을 넘어 문화적 성찰과 감탄이 공존하는 장소입니다. 또한 이곳은 결혼식이나 클래식 음악 공연 등 실제 문화 행사의 무대로도 사용되며, 전통과 현대가 지하 공간에서 만나는 진귀한 사례로 손꼽힙니다.

 

2. 데린쿠유 – 터키의 고대 지하 도시

터키 카파도키아 지역에는 수천 년 전 사람이 만든 거대한 지하 도시들이 존재합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데린쿠유(Derinkuyu)입니다. 이 도시는 약 8층, 최대 깊이 85m에 달하며, 한때 최대 2만 명까지 수용이 가능했던 지하 요새이자 도시였습니다.

고대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피난처로 삼았던 데린쿠유는 단순한 대피소를 넘어, 거주 공간, 학교, 교회, 창고, 무기고, 와인 저장소, 환기 통로 등 현대 도시의 기능을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좁은 통로는 외부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으며, 무거운 바위문을 밀어 폐쇄할 수 있는 기능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여행 포인트
데린쿠유의 내부는 어두운 굴과 계단, 비좁은 통로로 구성되어 있어, 일종의 ‘모험형 여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좁고 어두운 공간을 통과하며 인간의 생존 본능과 고대인의 지혜를 체험할 수 있으며, 일부 통로는 몸을 숙이거나 옆으로 틀어야만 지나갈 수 있을 만큼 협소합니다.

지하 전체에는 수직형 통로와 환기 시스템이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어, 산소가 부족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도 놀라운 부분입니다. 이 모든 구조물이 기원전 수세기 이전부터 조성되었다는 사실은 데린쿠유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고대 문명의 증거이자 신비의 공간임을 입증합니다.

3. 파리 카타콤 – 죽음이 만든 지하 미술관

파리 지하에는 수백만 명의 유골이 잠든 공간이 존재합니다. 바로 파리 카타콤(Catacombes de Paris)입니다. 18세기 후반, 파리의 공동묘지가 포화 상태에 이르자 프랑스 정부는 도시 지하의 석회석 채석장을 개조해 시신을 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형성된 것이 길이 약 1.7km에 이르는 지하 납골당입니다.

이곳은 단순한 묘지가 아닙니다. 해골과 뼈가 벽을 따라 정교하게 쌓여 있으며, 어떤 곳은 예술 작품처럼 배열되어 있어 마치 죽음을 주제로 한 전시관 같은 느낌을 줍니다. 실제로 프랑스 혁명 시기의 인물들과도 관련된 유골이 있다는 설도 많으며, 역사와 미스터리가 뒤섞인 공간입니다.

여행 포인트
카타콤은 정식 개방된 구간 외에도 탐험가나 도시 탐험가(urban explorer)들이 몰래 드나드는 미지의 공간으로도 유명합니다. 일부 구간은 불법적으로 벽화를 그리고 술을 마시는 비밀 모임 장소로 활용되기도 해, ‘지하 도시 문화’라는 독특한 형태로 진화해왔습니다.

정식 입장 구간은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비교적 안전하지만, 내부는 습기와 특유의 냄새, 그리고 끊임없는 어둠으로 인해 다소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 분위기 덕분에 파리 카타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역사 여행지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 마치며: 빛 없는 곳에서 만나는 깊은 이야기
지하 공간은 어둡고 불편하며 폐쇄적인 공간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삶과 죽음, 창조와 생존이 응축된 장소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햇볕 가득한 명소만을 찾아다니지만, 지하 세계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이야기와 인간의 유산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장소들을 여행하는 것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우리 존재의 본질과 역사를 되새기는 깊이 있는 체험이 됩니다. 만약 특별한 여행을 원한다면, 이번에는 빛이 아닌 어둠 속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그 어둠 속에서야말로 인류의 진짜 흔적을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