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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모두 떠난 그곳에서, 나는 왜 머물기를 선택했을까?”
도시는 보통 사람들로 붐비고, 불빛과 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에는 시간이 멈춘 듯, 사람이 떠난 자리에 흔적만 남은 ‘유령도시’들이 존재합니다. 전쟁, 사고, 경제 붕괴, 자연재해, 혹은 단순한 방치로 인해 사라진 도시들. 그곳에선 과거의 흔적과 침묵이 공존합니다.
이런 폐허 도시들 중 일부는 지금도 제한적으로 관광이나 숙박이 허용되며, 그 자체로 특별한 여행 경험이 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실제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유령도시’ 3곳을 중심으로, 그곳의 역사와 현재, 여행자들이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체르노빌, 우크라이나 – 원자로 그늘 아래에서 보내는 밤
1986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로 기록된 체르노빌 원전 폭발은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수십만 명을 이주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체르노빌과 인근 도시 프리피야트는 즉시 폐쇄되었고, 이후 수십 년간 출입이 금지된 방사능 격리 구역(Exclusion Zone)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정부 허가 하에 제한된 구역과 시간 내에서 일정 지역 내 숙박이 가능해졌습니다. 현지 가이드 동행 하에 프리피야트와 원전 인근을 탐사하고, 인근 허가된 민간 숙소나 정부 등록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어떤 느낌일까?
도시 전체가 1986년에 멈춰 있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방치된 학교, 병원, 관람차, 버려진 유치원과 붕괴된 주택들 속에선 소름끼치면서도 묘한 정적이 흐릅니다. 숙소 역시 최소한의 전기와 난방만 갖춘 상태이며, 정해진 구역 외에는 이동이 금지됩니다.
방사능 수치는 정밀 측정기를 통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되며, 대부분의 허용 구간은 일시 노출로 인체에 해가 없을 정도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하룻밤은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문명이 무너진 자리에서 인간은 무엇을 남기는가’에 대한 깊은 사유와 마주하는 시간이 되죠.
2. 센트럴리아, 미국 – 지하 화재로 사라진 도시 위에 선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센트럴리아(Centralia)는 한때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던 광산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1962년 석탄 광산에 지하 화재가 발생, 불씨가 지하로 번지며 꺼지지 않는 불이 지금까지도 계속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지반이 꺼지고 유독가스가 분출되면서, 정부는 도시 전체를 강제 철거했고 주민들은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5명 이하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도로와 폐가 일부는 여전히 남아 있고, 관광객 대상 제한적 탐방과 비공식 숙박 체험도 가능합니다.
실제 숙박 가능한가?
공식적인 호텔이나 민박은 존재하지 않지만, 인근 외곽 마을에서는 센트럴리아 인근 숙소와 연계한 ‘폐허 탐험 숙박 패키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부 유튜버나 도시 탐험가(urban explorer)들은 공동묘지 근처나 철거된 마을 내부에서 야영 또는 캠핑을 감행하며, 그 영상이 전 세계에 퍼지면서 이 지역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가장 유명한 장소는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는 ‘Graffiti Highway’로, 이는 실제 도로에 낙서를 가득 채운 길입니다. 2020년 이후 비공식 폐쇄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여행자들이 인근까지 접근해 사진을 찍거나 묵념을 올립니다.
센트럴리아는 무섭기보다는 슬프고도 기이한 정적의 도시입니다. 도시 전체가 ‘지하에서 타오르는 불’이라는 설정 자체가 현대 문명의 불안정함을 극단적으로 상징합니다. 그곳에서의 하룻밤은 마치 ‘지구의 경고문’ 속에서 잠드는 듯한 체험입니다.
3. 하시마섬, 일본 – 군함처럼 생긴 고립된 산업 유적
일본 나가사키항에서 배를 타고 30분. 바다 위에 군함처럼 생긴 작은 섬이 있습니다. 바로 하시마섬(端島, Hashima) 또는 군함도(軍艦島)라 불리는 유령도시입니다. 이곳은 한때 석탄 산업으로 번성해 1960년대엔 인구 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를 정도로 붐볐던 곳입니다.
그러나 석탄 산업 쇠퇴와 함께 1974년 폐광, 전 주민 철수. 그 이후 수십 년간 아무도 살지 않는 도시가 되었고, 건물은 그대로 방치된 채 바다 바람에 침식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영화 <007 스카이폴>, <군함도> 등에서도 등장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최근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며 일부 지역 탐방 및 숙박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숙박 체험은 어디서?
현재 하시마섬 내에서의 숙박은 건물 붕괴 위험으로 직접적인 숙박은 금지되어 있으나, 나가사키 인근에서는 ‘군함도 야간 탐방+숙박 연계 프로그램’이 존재합니다.
즉, 해가 진 후 폐허를 돌아보는 투어 후, 인근 조선소 기지에 위치한 테마 숙소나 탐험자 캠프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방식입니다.
이 체험은 마치 ‘문명 붕괴 시뮬레이션’에 가까우며, 건물 내부의 원형 그대로의 풍경, 녹슨 놀이터, 텅 빈 학교 복도, 무너진 고층 아파트를 눈앞에서 보면 거대한 폐허 속에서 인간의 흔적과 허무함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하시마섬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20세기 산업화의 극단성과 그 몰락의 현실을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그 밤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이런 풍경은 먼 미래가 아니라, 어쩌면 오늘의 연장이었다고.”
🌘 마치며: 사람이 떠난 자리에 남는 것들
유령도시에서의 하룻밤은 ‘이색적 체험’ 그 이상의 무게를 지닙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삶이 끝난 자리를 마주하는 일이며, 문명이란 얼마나 쉽게 사라질 수 있는가를 체감하게 합니다.
체르노빌, 센트럴리아, 하시마섬—각기 다른 이유로 사라졌지만, 그곳에 남은 건 단순한 폐허가 아닌 사람들의 흔적, 기억,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입니다.
그곳에서의 밤은 어둡지만, 그 어둠 속에는 우리가 잊고 지냈던 어떤 진실이 깃들어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