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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 여행기

by 마루누나쓰 2025. 5. 4.

    [ 목차 ]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야 보이는 마을들”
보통 여행은 ‘멀리’ 가는 것이지만, 때로는 ‘높이’ 가는 것이 더 극적인 경험을 선사합니다.
지구상에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한계의 고도에서 실제로 생활하는 마을들이 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산악 지대가 아니라, 해발 4,000m~5,000m 이상에서 실제로 정착하고 살아가는 인간의 한계 마을입니다.

산소가 희박하고, 밤에는 영하로 떨어지며, 날씨는 종잡을 수 없지만 그곳엔 삶이 있고 공동체가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 3곳을 중심으로, 그곳의 환경, 주민들, 방문 방법 등을 소개합니다.
이 마을들에 닿는다는 건 단지 고도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의 깊이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구름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 여행기
구름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 여행기

1. 페루 라 리콘다(La Rinconada) –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

남미 페루의 라 리콘다(La Rinconada)는 세계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영구 거주지로, 해발 약 5,100m에 위치한 ‘지붕 위의 도시’입니다. 안데스 산맥 깊은 곳, 만년설이 덮인 빙하 옆에 자리 잡은 이 도시는 공식적으로 50,000명 이상이 거주하는 도시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금광 산업의 중심지로, 수많은 사람들이 ‘El Dorado(황금의 도시)’를 꿈꾸며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하지만 라 리콘다는 전기, 물, 하수도 인프라가 극히 부족하며, 정부의 행정 지원조차 제한적인 무정부적 공간이기도 합니다.

 

극한의 생존 환경
라 리콘다의 기온은 연중 대부분이 0도 이하이고, 공기 중 산소 농도는 평지의 약 50~60% 수준에 불과합니다. 고산병은 일상이며, 주민 대부분은 산소통 없이 작업장에 들어가고, 일부는 수면 중 저산소 쇼크로 사망하기도 합니다.

주민들은 금을 찾기 위해 하루 10시간 이상 광산에서 일하지만, 임금은 지급되지 않고 ‘금 채굴의 일부를 취할 수 있는 권리’를 대신 받는 구조입니다. 이로 인해 빈곤, 환경오염, 아동 노동, 여성 차별 등의 문제가 뒤엉켜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한 방’을 꿈꾸며 이곳을 떠나지 않습니다.

 

여행객은 라 리콘다에 직접 들어가는 것이 사실상 매우 어렵지만, 인근 푸노(Puno)에서 현지 가이드 동행하에 접근이 가능하며, 안데스 문화와 노동 현장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고 도시라는 타이틀 뒤엔 인간의 욕망과 생존의 본질이 숨겨져 있습니다.

2. 티베트 나굴(Nagqu) – 하늘과 맞닿은 유목민의 땅

중국 티베트 자치구 북동부, 라싸에서 북쪽으로 약 330km 떨어진 고원 지대에 위치한 나굴(Nagqu)은 해발 약 4,500m에서 수만 명이 살아가는 고지 마을입니다. 이곳은 티베트 고원의 중심부이자, 고원 유목문화의 심장이라 불리는 지역으로, 약 12만 명 이상의 티베트족 유목민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나굴은 일반적인 도시와는 거리가 멀지만, 자체 시장, 철도역, 숙소, 통신망, 교육 기관 등이 갖춰진 고원 도시입니다.
산소 부족과 극심한 일교차에도 불구하고, 티베트인들은 이 땅에서 수백 년간 살아왔으며, 티베트 불교 전통과 유목문화가 깊이 녹아 있는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고도와 전통의 조화
나굴의 평균 기온은 겨울 –15°C, 여름 10°C 안팎이며, 연중 대부분이 건조하고 바람이 강합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야크와 양을 방목하며 살아가고, 전통 천막인 ‘바오(Black Tent)’에 머무르며 이동식 거주를 유지합니다.
마을에는 라마 불교 사원이 있으며, 지역 주민들은 명상과 만트라(진언)를 일상화하며 고산 적응을 영적인 수행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나굴은 최근 티베트 철도 개통으로 접근성이 다소 향상되었으며, 라싸에서 하루 만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유목민 생활 체험, 고산 불교 사원 순례, 전통 약초 수확, 고산 호수 트레킹 등을 할 수 있으며,
하늘 아래 가장 가까운 신앙과 자연을 만나는 여정이 됩니다.

3. 네팔의 ‘쿰중 마을’ – 에베레스트 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네팔 히말라야 지역의 쿰중(Khumjung)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Everest) 기슭에 자리 잡은 고산 마을로, 해발 약 3,800m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비교적 체계적인 정착 마을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곳은 셰르파(Sherpa)족의 주요 거주지 중 하나로,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등반자들이 중간에 들러가는 ‘고산 생활의 관문’입니다.

쿰중에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있는 교육 시설이 있으며, ‘힐러리 학교’라고도 불립니다.
이 학교는 1961년 에베레스트 초등정에 성공한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설립한 학교로, 지금까지도 셰르파 청소년들의 교육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고산 마을의 일상
쿰중의 삶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인합니다. 주민들은 감자 농사, 야크 목축, 티베트 차(버터차) 제조, 민박 운영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마을 중심에는 셰르파 사원과 작은 불탑, ‘설산의 수호신’을 모시는 공간이 있습니다.

쿰중은 계절마다 에베레스트 등반자들이 지나가며, 이들을 위한 로지(고산 숙소)가 마을의 주 수입원이기도 합니다.
또한, 고산 순례객들이 며칠간 머물며 적응하는 고도 훈련지로도 쓰이며, 이곳에서 고산병 적응을 마친 후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됩니다.

전기는 태양광 발전으로 충당되며, 통신도 매우 제한적입니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하늘 가까이에서 가장 평화로운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갑니다.
쿰중에 머문다는 것은 단지 풍경이 아닌, 고요한 고산의 시간 속에서 ‘높이’보다는 ‘깊이’를 체험하는 일입니다.

 

🏔️ 마치며: 숨이 차오를수록 맑아지는 풍경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단지 높은 고도를 버텨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극한의 환경에 적응하며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었고, 생존을 넘어 삶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라 리콘다의 금광 채굴자, 나굴의 유목민, 쿰중의 셰르파. 모두 고도를 향해 오른 사람들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내려앉아 살아낸 사람들’입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들을 방문한다는 건, 단순한 고산 여행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던 인간의 생존력, 공동체성, 자연과의 화해를 되새기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숨이 차오르더라도, 그곳에서는 삶이 더 맑고 깊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