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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사라진 마을들 - 존재했지만, 더는 남아 있지 않은 곳

by 마루누나쓰 2025. 5. 6.

    [ 목차 ]

“사람도, 삶도 분명히 있었지만… 지금은 지도에서조차 사라진 마을들”
우리가 보는 지도는 현재의 모습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지구 위에는 한때 사람들이 살았고, 거리가 있었으며, 학교와 시장이 있었던 마을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 지도에도, 내비게이션에도 등장하지 않는 ‘사라진 마을들’이죠.

전쟁, 환경 변화, 산업 쇠퇴, 인위적 개발 등 다양한 이유로 완전히 소멸된 마을들은 우리에게 ‘공간’이 얼마나 유한한 것인지 알려줍니다. 이번 글에서는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거나, 법적·사회적으로 지워진 3곳의 마을들을 중심으로 그 뒷이야기를 담아봅니다.

이 마을들은 단순히 폐허가 아니라, 기억 속에만 남은 장소, 혹은 잊힌 역사 그 자체입니다.

지도에서 사라진 마을들 - 존재했지만, 더는 남아 있지 않은 곳
지도에서 사라진 마을들 - 존재했지만, 더는 남아 있지 않은 곳

1.아메리카의 고스트타운 ‘센트럴리아, 펜실베이니아’ – 지하 화재로 사라진 마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센트럴리아(Centralia)는 1960년대 초까지 석탄 산업으로 번성하던 활기찬 광산 도시였습니다. 한때 인구는 2,000명이 넘었고, 교회, 학교, 극장, 시장 등 모든 사회 기반시설이 갖춰진 전형적인 중소도시였습니다.

그러나 1962년, 지하 탄광에 불이 붙으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 불은 빠르게 퍼졌고, 광산 아래에 남은 석탄에 산소가 공급되며 불씨가 수십 킬로미터 아래까지 확산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화재가 꺼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도에서 지워진 도시
당국은 수십 년에 걸쳐 화재 진압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이후 도로 균열, 유독가스 분출, 갑작스러운 함몰로 인해 마을 자체가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었습니다.
1980년대 들어 연방정부는 주민 강제 이주 및 철거 작업을 개시했고, 주민 대부분이 떠난 이후 1992년, 펜실베이니아 주 정부는 ‘센트럴리아’를 지도에서 공식 삭제했습니다.

현재 이곳에는 몇 가구만이 법적 투쟁을 통해 거주 중이며, 도로와 가로등, 묘지 일부만이 남아 있을 뿐, 공식적인 주소나 우편, 인프라는 모두 중단되었습니다.

‘꺼지지 않는 지하 화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최소 수백 년은 계속 타오를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마을은 단순히 ‘없어진 도시’가 아니라, 산업과 환경, 인간의 욕망이 맞부딪친 결과로 탄생한 유령의 공간입니다.

 

2. 프랑스 오라두르 쉬르 글란 – 전쟁의 비극으로 멈춰버린 마을

프랑스 중서부의 작은 마을 오라두르 쉬르 글란(Oradour-sur-Glane)은 1944년 6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군에 의해 하루아침에 파괴된 비극의 장소입니다.

나치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 마을에 주둔해 있던 제2SS기갑사단이 진입해 마을 남성들을 총살하고 여성과 아이들을 교회 안에 가둔 채 불태우는 참극을 벌였습니다.
이날 학살로 인해 마을 주민 약 642명이 목숨을 잃었고, 마을 전체는 사실상 불타 사라졌습니다.

 

‘보존된 폐허’로 남다
프랑스 정부는 이 마을을 전후 재건하지 않고, 전쟁의 잔혹성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그대로 보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불탄 차, 무너진 교회, 총탄 자국이 선명한 집터, 녹슨 자전거 등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 오라두르 쉬르 글란은 ‘죽은 마을(Les Martyrs)’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방문객은 철저히 ‘침묵’과 ‘경건’ 속에서 이곳을 걸어야 합니다.
프랑스 역사 교과서에는 이 마을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지도에는 없는 마을’로 소개되며,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지우지 않는 기억의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이 마을은 지도에서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성에서 길을 잃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경고하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3. 중국 가오야디엔 – 댐 건설로 물속에 잠긴 마을

중국 허난성에 위치한 가오야디엔(Gaoyadian) 마을은 한때 약 2,000여 명의 주민이 살던 농촌 공동체였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국가의 대형 수력발전 프로젝트인 ‘다부허 댐’ 건설 계획으로 인해 가오야디엔을 포함한 인근 20여 개 마을은 수몰지구로 지정되었고, 정부는 대규모 이주를 추진했습니다.

댐 건설로 인해 마을은 물속으로 완전히 잠기게 되었으며, 현재는 지표상에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주민들은 도시 외곽 신도시 단지로 옮겨졌지만, 이주민 대부분은 농지를 잃고 도시 적응에 실패하며 생계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지도엔 더 이상 없는, 기억 속의 마을
가오야디엔은 국가 지도에서 사라졌고, 디지털 지도 서비스에서도 더 이상 검색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매년 수몰 지역 근처에서는 기억식과 위령제, 옛 마을 사진 전시회 등이 열리며, 한때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지금도 그 마을을 ‘물 아래 있는 고향’으로 기억합니다.

비슷한 사례는 중국 곳곳에 존재하며, 산샤댐 건설 당시 1백만 명 이상이 삶의 터전을 잃은 기록은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지는 지역 공동체’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가오야디엔은 물리적으로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정체성과 문화 속에 남아 있는 ‘지도 너머의 마을’입니다.

 

🗺️ 마치며: 공간은 사라져도, 기억은 남는다
지도에서 지워졌다는 건 단지 그 장소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건 국가가 잊기를 원하거나, 사람이 감당할 수 없었던 현실이 있었기 때문에 삭제된 흔적일지도 모릅니다.

센트럴리아는 인류의 욕망이 만든 불타는 구멍이고,
오라두르는 전쟁이 만든 침묵의 공간이며,
가오야디엔은 발전이 만든 망각의 수면 아래 가라앉은 기억입니다.

이 마을들은 물리적으로는 사라졌지만, 그 이야기와 의미는 시간이 지나도 결코 지워지지 않습니다.
여행이란 아직 존재하는 곳만이 아니라, 지워졌지만 여전히 말하는 공간들을 찾아가는 일이기도 합니다.